고운실 칼럼니스트
길가다 돌담 아래 마주친 민들레. 사진=고운실 칼럼니스트
■ 길가에서 마주친 작은 희망
오래된 카메라 사진첩을 넘기다 노란 민들레 한송이를 만났다. 이른 햇살이 퍼져나가는 인도의 벽돌 틈새에 피어서 나와 눈을 마주쳤던 어여쁨이 내게 인사를 건낸다. 도심의 먼지와 자동차 매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로수 솔잎이 떨어져 내린 그 사이로 마치 ‘여기 살아 있다’는 듯 고개를 들어 올린 모습은 눈길을 붙잡기에 충분했었다. 물론 그 옆에는 다른 잡초들도 있었지만 민들레의 수줍음이 어여뻣던 것 같다. 노란빛의 당당함과 작은잡초가 마치 인생의 두 얼굴을 보여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흔해서 때론 발로 밟고 스쳐 지나가는 꽃인데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마음을 흔든다.
민들레는 잡초라 불리지만 사실은 그보다 훨씬 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식물이다. 시골에서 학교다녀 오는 길에 “민들레 씨앗을 불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며 바람을 향해 친구들은 학교 오가는 길에서 놀이 삼아 숨을 내뱉었던 기억이 있다. 실바람을 타고 멀리 흩어지는 씨앗을 바라보며 가슴 속 간절한 마음을 실었던 그 순간, 홀씨가 날아가 닿는 곳마다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었기에, 민들레는 이미 우리들의 어린 영혼의 치유자였다. 아이들이 손에 민들레를 들고 ‘후—’ 하고 불때는 단순한 놀이를 넘어 어려운 시절 ‘희망의 의식’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 포공영, 바람을 품은 이름
민들레에 얽힌 이야기는 한국 민속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느 마을에 아픈 아이가 있었는데, 어머니가 산과 들에서 뜯어온 민들레 잎을 다려 마시게 하니 아이가 차츰차츰 회복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민들레를 ‘포공영(蒲公英)’, 곧 ‘공작의 깃털처럼 가볍게 바람에 날리는 풀’이라 불렀다. 또 한편으로는 민들레를 두고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다. “잡초라 밟아도 밟아도 다시 일어나니, 사람은 민들레처럼 살아야 한다.” 민들레를 잡초라 부르면서도 그 꿋꿋한 생명력은 늘 존경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 민들레가 전하는 치유의 식탁
민들레는 단순히 소박한 들꽃이 아니다. 동양의학과 현대의학 모두 그 치유력을 인정하고 있다. 동양의학에서는 민들레를 “열을 내리고 독을 풀며, 종기를 삭히고 젖이 잘 돌게 한다”고 기록했다. 민간에서는 젖몸살이 난 산모의 가슴에 민들레 잎을 찧어 붙이면 통증과 염증이 가라앉는다고 전해졌다. 또한 위장에 열이 많아 생긴 소화불량이나 간에 쌓인 열을 풀어내는 데에도 널리 쓰여왔다.
현대의학 연구에 따르면 민들레에는 항산화·항염 작용을 하는 플라보노이드와 폴리페놀 성분이 풍부하다. 민들레 뿌리 추출물은 간세포 손상을 억제하고 해독 기능을 돕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특정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항암 가능성도 보고되었다. 이 밖에도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혈당 상승을 완화하며, 항바이러스·항세균 작용으로 호흡기나 피부의 감염을 줄이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민들레는 몸속의 열을 내리고 독소를 배출하며, 간과 위를 보호하고 회복을 돕는 자연이 준 치유의 약초라 할 수 있다.
①민들레 뿌리 차
[재료] 민들레 뿌리
[만드는 법]
깨끗이 씻어 얇게 썬 뒤 볶아 말려 차로 우린다. 구수하면서도 은은한 쓴맛이 커피를 닮았고, 간 해독과 피로 회복에 도움을 준다.
②민들레 주먹밥
[재료] 밥, 볶은 민들레 잎, 참깨, 김, 소금
[만드는 법]
밥에 잘게 썬 민들레 잎과 김, 참깨를 넣고 주먹밥을 만든다. 도시락이나 간단한 건강식으로 좋다.
■ 두 빛깔의 희망을 닮아
흰 민들레와 노란 민들레, 두 꽃은 서로 다른 빛깔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흰 민들레는 희귀하고 청정한 순수의 상징이며, 노란 민들레는 흔하지만 꿋꿋하게 살아남는 희망을 말한다. 흰 민들레는 보기 드물어 특별함을 주지만, 노란 민들레는 길가 돌담 사이, 보도블록 틈새에서도 꺾이지 않고 한결같이 자리를 지킨다. 그래서 대중가요 속 ‘일편단심 민들레’라는 노래 가사도, 흔하디흔해도 꺾이지 않고 늘 곁을 지키는 노란 민들레의 강인함과 사랑의 상징을 노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때로 희소한 흰빛의 아름다움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하고, 흔한 노란빛 속에서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기도 한다.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진정한 희망은 절망의 한가운데에서 태어난다.”고 말했다. 지쳐 있던 누군가가 문득 돌담을 뚫고 피어난 민들레를 바라본다면, 불확실한 시대에도 삶을 지켜내는 치유의 메시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민들레는 잡초라 불리지만, 사실은 우리 곁에 가장 가까운 치유자다. 길가에 핀 민들레 한 송이를 바라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면, 그것이 바로 자연이 건네는 치유의 언어일 것이다. 식탁 위의 한 접시 민들레 나물처럼, 삶도 때로는 씁쓸하고 때로는 향긋하다. 그러나 그 쓴맛 속에 몸을 회복시키는 힘이 숨어 있음을 기억하자.
민들레의 두 빛깔 이야기가 작은 치유와 희망의 씨앗으로 우리 곁에 흩날려 닿기를 바란다. 돌담을 비집고 나오고 사람들이 밟아대는 보도블록 위의 민들레는 화려하지 않아도 꿋꿋하게 피어나며, 우리가 걸어갈 길을 다시 일깨워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