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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실의 자연치유 식탁 13] 녹두-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초록 씨앗이 전해주는 위로
  • 기사등록 2025-08-21 16:32:55
  • 기사수정 2025-09-10 16: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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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상동시장 곡물가게 녹두. 사진=고운실 칼럼니스트

버스 안의 ‘당당한 할머니’의 녹두보따리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던 내가, 오늘은 조금 늦었다. 창밖으로 스치는 늦여름의 햇살이 유난히도 뜨겁게 느껴졌다. 병원에서 위로와 약 처방을 받고 나오는 길, 머릿속에 맴도는 말이 있었다 “우리는 왜 진실을 말하지 못 하는가. 진실을 말하는 용기보다, 진실을 묻는 사회가 필요하다.” 최근 주변에서 겪은 불편한 일들 탓일까. 진실은 권력 앞에서 작아지고, 침묵은 생존의 기술이 되는 현실 속에서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다.

 

사무실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맡긴 순간, 뒷문으로 한 할머니가 올라탔다. 그때 운전기사님이 “어르신, 뒷문으로 타시면 위험해요!”라고 소리를 높였지만, 할머니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말했다. “빨리 타려고 그랬지!.. 내가 다리도 아픈데.” 그 당당함이 묘하게 귀여워 방금 전까지 병원에서 울컥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시장 바구니가 넘어져 온갖 물건이 바닥에 쏟아졌다. 운전기사님은 아까의 불친절을 만회하듯 차를 멈추고 부랴부랴 주워 담았고, 할머니는 우렁차게 말했다. “기사양반이 뭐라고 하는 바람에 동생이 준 작년 묵은 녹두를 흘렸잖아. 이걸 어쩐디야~ 오늘 저녁에 먹으려고 먼 길 왔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토피로 고생하던 내게 해주던 녹두죽과 녹두물이 떠 올랐다. 그때는 그냥 ‘어머니의 보양식’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피부병 완화와 해열·해독 작용이 있는 녹두의 효능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여름 한낮의 열기는 몸을 지치게 하고, 마음마저 무겁게 만든 날 버쓰에서 내리니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푸른색을 위안삼아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 한 스푼이 주는 위로에 할머니가 어머니인 듯 웃음인 듯 가시지 않는다

 

◆ 녹두의 전설과 민간 이야기

녹두는 예로부터 “백 가지 독을 푸는 푸른 구슬”이라 불렸다. 장마철 상한 음식을 먹었거나 뱀·곤충에 물렸을 때 녹두죽을 먹이곤 했다. 《식료본초》에는 녹두가 오장을 고르게 하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피부를 윤택하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여름철 더위를 식히고 병후 회복을 돕는 식재료로, 농경사회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곡물이었고, 발아한 숙주는 비타민 C가 풍부해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됐다.

 

또한 ‘시집 못 간 처녀가 녹두를 심으면 시집간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녹두가 싹이 빨리 트고 열매가 풍성해 ‘좋은 인연이 빨리 찾아온다’는 상징에서 비롯됐다. 중국에서는 여름철 더위를 식히는 ‘녹두탕’을, 조선 궁중에서는 숙취 해소와 열사병 예방을 위해 녹두 음식을 즐겨 냈다.

 

◆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초록 치유

①여름의 한접시 녹두 샐러드 (2인분)

[재료] 

불린 녹두 80g, 오이 ½개, 빨간 파프리카 ¼개, 방울토마토 6개, 적양파 ¼개, 올리브유 1큰술, 레몬즙 1큰술, 허브소금 약간, 다진 파슬리 약간

 

[만드는 법] 

녹두를 삶아 식히고, 채소와 함께 볼에 담는다. 올리브유·레몬즙·허브소금으로 만든 드레싱을 넣어 가볍게 버무리고 파슬리를 올린다.

 

② 여름을 시원하게, 몸을 맑게 하는 녹두 아이스크림

[재료] (2인분)

불린 녹두 80g, 우유 125ml, 생크림 125ml, 설탕 40g, 소금 약간, 바닐라 ½작은술, 팥앙금 25g, 견과류 15g

[만드는 법] 

녹두를 삶아 곱게 간 뒤, 우유·설탕·소금과 함께 데운다. 불을 끄고 생크림·바닐라를 넣어 식힌 뒤 3시간 이상 냉장 숙성한다. 아이스크림 메이커에 돌리거나 냉동실에서 1시간마다 저어주기를 3~4회 반복한다. 그릇에 담고 팥앙금·견과류를 올린다..

 

◆ 진실과 치유의 씨앗

버스에서 만난 당당한 할머니처럼, 우리에게도 때로는 녹두 한 줌의 진실이 필요하다. 녹두는 몸의 열을 식히고, 독을 풀고, 마음을 부드럽게 한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세상이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속에 ‘진실의 씨앗’을 품고 있다면, 언젠가 그 초록빛이 세상에 드러날 날이 온다. 피부의 트러블이 몸속 불균형의 신호이듯, 관계 속 침묵과 왜곡도 언젠가는 진실로 드러난다. 그날까지 우리는 건강을 지키듯 마음의 해독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 저녁, 녹두죽 한 그릇에 나를 위로하는 초록의 힘을 담아보자.

“세상을 바꾸는 것은 큰 힘이 아니라, 조용히 자라나는 씨앗의 힘이다.”

그 힘은 고운 초록빛처럼, 결국 진실을 품은 사람의 얼굴에 맑은 빛을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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